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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이름으로 지옥을 만들다” — 장로교 권사가 세운 형제복지원, 봉사인가 감옥인가

by hey1s 2026. 3. 1.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단순한 복지시설의 타락이 아니라, 장로교 권력과 교계의 침묵이 어떻게 인권 유린을 방조했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에 존재했던 형제복지원은 겉으로는 “기독교 정신에 따른 구제 사역”을 내세웠다. 운영자 박인근은 장로교 장로(권사) 신분의 신앙인이었고, 교회 안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모범적 복지사업가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시설의 실상은 복지가 아니라 국가 폭력에 협력한 거대한 강제수용소였다.

군사정권이 거리 정화를 명분으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던 시기, 형제복지원은 그 정책을 떠받치는 핵심 기관이 됐다. 수천 명이 죄목도 없이 끌려와 감금됐고, 군대식 통제 아래 폭행·고문·성폭력·강제노동이 일상처럼 자행됐다. 수백 명이 죽어갔지만, 교회는 이 참상 앞에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장로라는 종교적 권위는 박인근을 보호하는 방패가 됐다. 그는 교회 안에서 ‘선한 목자’로 불렸고, 지역 교계는 그 이미지를 의심하지 않았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시설 안에서는 예배와 신앙행사가 강요됐지만, 그 신앙은 억압받는 사람을 해방시키는 복음이 아니라 통치와 순종을 강요하는 도구였다.

당시 부산기독교교회협의회와 YMCA 등 교계 단체들이 시설의 실상을 알고 있었다는 증언이 이어졌음에도, 공개적인 폭로나 조직적 대응은 거의 없었다. 이는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장로교 중심의 지역 교회 구조가 권력과 결탁해 침묵을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1987년 수사가 시작됐을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정권의 외압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동안 교회는 정의를 요구하기보다 방관에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 그 결과 핵심 책임자는 불법감금 혐의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사회로 복귀했다. 피해자들이 수십 년 동안 고통 속에 살아가는 동안, 교회는 스스로의 책임을 진지하게 고백하지 않았다.

이 사건이 드러내는 문제는 분명하다.
장로교가 강조해 온 도덕성·청지기 정신·사회적 책임은 현실의 권력 앞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가난한 자를 돌본다는 자선 담론은 감시를 무디게 했고, 교회 직분은 비판을 차단하는 면죄부가 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로 국가의 책임이 확인된 것처럼, 교회 역시 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형제복지원은 한 장로의 범죄가 아니라, 권위주의 정권에 순응하고 내부 인물 보호에 급급했던 장로교 구조의 실패를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비극은 묻는다.
교회는 약자의 편에 서 있었는가, 아니면 질서를 유지하는 권력의 편에 서 있었는가.

형제복지원의 참상은 신앙의 이름이 어떻게 폭력을 가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침묵의 대가는, 번호로 불리다 죽어간 수백 명의 생명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