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코라디 신부가 2019년 8월 5일 아르헨티나 멘도사에서 법정 밖으로 호송되고 있다. 사진: REUTERS/Maximilano Rios
대륙을 넘어 이어진 비극: 청각장애 아동들의 악몽
미국 가톨릭 성직자들의 아동 성범죄가 알려지면서 교회의 어두운 민낯이 드러났지만, 다른 지역에도 충격적인 사건들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멀리 남미 아르헨티나까지 이어진 안토니오 프로볼로 청각장애인 학교의 성폭력 비극입니다. 수십 년간 이 학교의 청각장애 아동들이 성직자들에게 끔찍한 성폭행과 학대를 당했습니다.
이탈리아 베로나에 위치한 프로볼로 농아학교 졸업생 67명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학교에서 사제와 수도사들에게 반복적으로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용기 있게 고발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 내부에서 해결하려 했지만 제대로 된 조치가 없자, 피해자들은 2009년 집단으로 세상에 진실을 알렸고, 이 중 14명은 자신들을 학대한 가해 성직자 24명의 명단까지 제출했습니다.
이 명단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니콜라 코라디 신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그가 1970년대 이후 아르헨티나로 건너가 그곳의 자매 학교에서 아이들을 계속 돌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코라디 신부는 아르헨티나에서도 호라시오 코르바초 신부와 함께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까지 멘도사의 프로볼로 청각장애인 학교 어린이들을 상대로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고, 결국 2016년 말에야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2019년 아르헨티나 법원은 코라디에게 징역 42년, 코르바초에게 징역 45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하며 이들의 죄를 엄중히 물었습니다. 이처럼 두 대륙에 걸쳐 오랜 기간 은폐되었던 청각장애 아동 대상 성범죄의 끔찍한 실체가 뒤늦게야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외면했고, 경찰이 나섰다
이 사건에서 가장 비판받는 부분은 교회 조직의 조직적인 은폐 시도와 안일한 대응입니다. 이탈리아 피해자들이 구체적인 증거를 제출하고 주교를 고소하자, 2010년에야 바티칸이 마지못해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이탈리아 법관이 조사관으로 임명되어 수개월간 피해자들을 인터뷰했지만, 조사 보고서는 가해자 명단 24명 중 단 5명에게만 교회 징계를 권고하는 수준으로 축소되었습니다. 특히 아르헨티나로 간 코라디 신부는 징계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바티칸은 고령의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그나마 징계받은 이들도 아이들과 떨어져 기도 속에 지내라는 가벼운 처벌뿐이었습니다. 이탈리아 교회 당국은 많은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사건을 축소시켰으며, 코라디처럼 해외로 이동한 위험 인물을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교회 측은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했습니다. 이탈리아 피해자들이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와 베로나 교구에 공동 서한을 보내 여전히 활동 중인 가해자 명단을 전달하고 코라디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바티칸은 2년 뒤에야 원론적인 답변을 보냈을 뿐입니다. 정작 아르헨티나 현지 교구에는 코라디에 대한 아무런 경고도 전달되지 않았고, 멘도사 교구는 그의 과거를 모른 채 받아들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바티칸과 현지 교구 사이에 위험 성직자에 대한 정보 공유나 감시 체계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2016년 아르헨티나 경찰이 학교를 급습하여 가해자들을 체포한 이후에야 바티칸은 서둘러 조사단을 파견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조차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뒤 공식적인 사과나 입장 표명을 거의 하지 않았고, 바티칸은 코라디 체포에 대해 논평을 사양하며 침묵했습니다. 교회 내부 고발과 경고는 철저히 묵살되었고, 사태는 결국 세속 당국의 개입으로만 멈출 수 있었습니다.
구조적 결함이 낳은 비극
"교회는 그들을 비참하게 저버렸고, 교황은 외면했으며, 결국 경찰이 대응했다." 이 말은 이 사건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코라디 신부는 2009년부터 위험 인물로 알려졌음에도 교회의 방치로 거의 10년간 추가 범행을 이어갔고, 오직 세속의 경찰과 법원이 나선 후에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투명한 책임 규명 절차의 부재 등 교회의 구조적인 결함이 끔찍한 비극을 지속시켰음을 보여줍니다.
이 사건은 겉으로는 신뢰와 도덕을 내세우는 거대한 조직이 내부적으로는 '권위와 이미지 보호'를 위해 얼마나 오랜 기간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례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