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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칼날: 가톨릭 교회가 식민지 정복에 남긴 그림자

by hey1s 2025. 5. 15.

1900년에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들어간 캐나다 원주민 아이들의 모습. EPA=연합뉴스

 



수 세기에 걸쳐 가톨릭 교회는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한다는 숭고한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유럽 열강의 식민지 정복이라는 현실이 있었습니다.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교황과 성직자들은 식민 제국 건설에 영적 정당성을 부여했으며, 때로는 앞장서서 원주민들의 삶과 인권을 파괴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수많은 토착 공동체가 삶의 터전, 문화, 그리고 목숨마저 잃어야 했던 비극적인 역사가 바로 가톨릭 식민주의가 남긴 지울 수 없는 상처입니다.

교황의 '면죄부': 땅을 빼앗고 사람을 노예 삼아도 좋다?

신대륙이 '발견'된 15세기 말, 교황청은 유럽의 해외 팽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교황들은 기독교인이 아닌 이교도의 땅은 정복하고 그 주민들을 노예로 삼아도 좋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칙서들을 발표했습니다. 심지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발견한' 비기독교 땅을 나눠 가지도록 승인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교황청의 논리는 이른바 '발견의 원칙(Doctrine of Discovery)'으로 발전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이론에 그치지 않고 국제 관행으로 자리 잡았고, 유럽 침략자들에게는 무력을 앞세워 원주민의 땅을 빼앗고 지배하는 행위에 대한 종교적 '면죄부'를 제공했습니다. '신앙 전파'라는 이름 아래, 침략자들은 십자가와 칼을 동시에 휘두르며 저항하는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이 원칙은 수백 년 후 미국 대법원 판결에까지 영향을 미쳐 원주민의 토지 소유권을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될 만큼 강력하고 지속적인 폐해를 남겼습니다.

피로 물든 정복: 학살과 문화의 파괴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딘 후, 수천만 명의 원주민이 학살, 강제 노동, 그리고 유럽에서 온 전염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염병이 주요 사망 원인이었지만, 식민 지배자들의 잔혹한 착취와 무자비한 폭력이 대규모 비극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정복자들은 성직자들과 함께 다니며 원주민들에게 개종을 강요했고, 따르지 않는 이들은 신의 이름으로 처벌했습니다.

일부 성직자들은 정복자들의 만행에 동조하거나 앞장서서 원주민을 억압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같은 양심적인 성직자들이 식민자들의 잔혹함을 고발하기도 했으나, 그 목소리는 거대한 식민 개척의 물결 속에 묻혀버렸습니다. 교회의 칙서들이 비기독교인의 노예화를 용인했기에 아프리카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대규모로 노예화되었습니다. 교회 자체도 이러한 노예 제도를 외면하거나 심지어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선교사들은 원주민의 고유한 신앙과 문화를 '이교도적'이라 여기며 체계적으로 파괴했고, 언어와 관습 사용을 금지하며 수많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말살했습니다.

끝나지 않은 비극: 기숙학교의 상처

식민주의 시대가 끝나갈 무렵에도 교회와 관련된 인권 침해는 형태를 바꿔 계속되었습니다. 가장 비극적인 사례 중 하나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북미 지역에서 운영된 원주민 기숙학교입니다. 캐나다와 미국 정부는 원주민 아이들을 가족으로부터 강제로 분리하여 이들 기숙학교에 수용했으며, 상당수의 학교를 가톨릭 교회가 운영했습니다.

이 학교들에 끌려간 약 150,000명의 원주민 아동들은 자신의 언어와 전통을 빼앗긴 채 혹독한 체벌과 끔찍한 신체적, 성적 학대에 시달렸습니다. 학대와 질병으로 사망한 아이들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 정확한 숫자는 기록조차 제대로 남지 않았습니다. 2021년 캐나다의 한 전직 기숙학교 부지에서 어린이 유해 215구가 집단 매장된 채 발견되면서 이 비극적인 역사가 다시 한번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2년 캐나다 방문 시 공식 사과하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악"이라고 표현했지만, 단순한 사과에 그쳤다는 비판과 함께 피해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실질적인 배상이나 책임 이행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현재의 분노와 외침: 정의를 향한 요구

과거 교회의 식민지 개입은 오늘날까지도 원주민 공동체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와 분노로 남아 있습니다. 캐나다 원주민 지도자들은 교황청에 15세기 칙서의 공식적인 폐기와 토착민 권리 회복을 요구하며, 단순한 사과를 넘어선 실질적인 보상과 책임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과거 식민화에 기여했던 인물들에 대한 재평가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교회가 과거 취득한 토지나 재산의 반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도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일부 나오고 있지만, 수백 년 묵은 깊은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교회의 역사적 도덕적 권위는 이러한 충격적인 진실들로 인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질수록 교회에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